가게를 열 것인가, 브랜드를 세울 것인가
창업을 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가게를 여는 일일까요. 사업자등록증을 내는 일일까요. 상품을 준비하고, 간판을 달고, 손님을 기다리는 일일까요.
물론 창업에는 그런 일들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창업이 되지 않습니다. 문을 열었다고 업이 세워지는 것은 아닙니다. 이름을 붙였다고 브랜드가 되는 것도 아닙니다. 상품을 팔기 시작했다고 하나의 세계가 만들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창업은 개업이 아닙니다.
창업은 하나의 업을 세우는 일입니다. 더 나아가 자신이 믿는 세계를 시장 안에 세우는 일입니다.
최근 우리나라를 비롯한 전 세계에서 실업률은 국가적 위기의 지표가 되고 있습니다. 취업이 어려워지면서 많은 사람의 선택은 창업으로 향합니다. 청년 창업과 실버 창업은 국가 정책 차원에서도 중요한 과제로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준비되지 않은 창업은 많은 사람을 더 깊은 생존의 위기로 밀어 넣었습니다. 창업의 기회는 있었지만, 창업을 지속할 철학과 경영의 기술은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개인 창업자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기업이 진행하는 브랜드 런칭도 마찬가지입니다. 개인은 창업이라는 이름으로 가게를 열고, 기업은 런칭이라는 이름으로 상품을 시장에 내놓습니다. 그러나 둘 다 같은 질문 앞에 서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가게를 여는 것인가. 아니면 브랜드를 세우는 것인가.
수많은 자영업자가 창업 후 2년을 넘기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실패한 것은 단지 노력이 부족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자본, 입지, 경기, 경쟁의 문제도 있었겠지만, 더 근본적인 문제는 창업을 너무 쉽게 ‘가게 여는 일’로 이해했다는 데 있습니다.
우리는 창업이라는 말을 자주 쓰지만, 그 말의 무게를 깊이 생각하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은 창업을 취업의 대안, 전업의 다른 이름, 혹은 생계를 위한 선택지로 이해합니다. 기업들도 브랜드 런칭을 마케팅과 프로모션의 연장선으로만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창업과 런칭을 그렇게 이해하는 순간, 우리는 처음부터 브랜드가 아니라 매장을 준비하게 됩니다.
분석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은 자신의 언어의 한계가 곧 자신의 세계의 한계라고 말했습니다. 창업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창업의 방식도 달라집니다. 창업을 가게를 여는 일로 정의하면, 우리는 가게 이상을 만들 수 없습니다. 창업을 생계의 대안으로만 생각하면, 생존을 넘어서는 브랜드를 만들기 어렵습니다.
창업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그 이유를 물으면, 저마다 현실적인 답이 돌아옵니다. 그러나 그 이유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하나같이 창업을 꿈꾸는 것이 아니라 탈출을 꿈꾸고 있습니다. 지금의 직장에서, 지금의 관계에서, 지금의 삶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망이 창업이라는 이름을 빌리고 있는 것입니다.
창업은 직장의 대안이 아닙니다. 창업은 자유로운 취업도 아니고, 편한 전업도 아닙니다. 창업은 자신이 감당해야 할 세계를 스스로 세우는 일입니다.
먹고살기 위한 생계와, 살기 위해 먹는 삶은 다릅니다. 좋아하는 일이 삶의 풍요가 될 때는 행복하지만, 그것이 생계의 압박이 되는 순간 좋아하던 일은 견디기 어려운 노동이 될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이 차이를 충분히 생각하지 못한 채 창업을 시작합니다. 좋아서 시작한 일이 생존의 압박 속으로 들어가는 순간, 그 일은 전혀 다른 얼굴을 갖게 됩니다.
그래서 창업은 감정으로 시작해서는 안 됩니다.
지금 직장이 싫어서, 상사가 힘들어서, 야근이 지겨워서, 더 자유롭고 싶어서 시작하는 창업은 오래 버티기 어렵습니다. 그런 창업은 대개 새로운 세계를 세우는 일이 아니라, 지금의 세계에서 도망치는 일이 되기 때문입니다.
물론 탈출이 필요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탈출만으로는 브랜드가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브랜드는 도망친 자리에서 생기지 않습니다. 브랜드는 질문하는 자리에서 생깁니다.
나는 왜 이 일을 하려는가. 나는 누구의 어떤 문제를 해결하려는가. 나는 어떤 세계를 시장 안에 세우려는가.
이 질문이 없으면 창업은 개업에 머물고, 개업은 언젠가 폐업의 가능성 앞에 서게 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많은 사람이 외식업을 선택합니다. 음식점과 카페는 가장 익숙한 창업 분야입니다. 하지만 익숙하다는 것은 쉽다는 뜻이 아닙니다. 모두가 들어갈 수 있는 시장은, 모두가 쉽게 사라질 수 있는 시장이기도 합니다. 창업은 진입의 문제가 아니라 지속의 문제입니다. 처음 문을 여는 것보다 어려운 일은, 그 문을 왜 계속 열어야 하는지를 증명하는 일입니다.
창업 준비기간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사람은 창업에 1∼2년 혹은 2∼3년 정도의 준비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6개월이나 3개월 안에 시작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머리로는 오래 준비해야 한다고 알지만, 현실에서는 급하게 시작합니다. 그 이유는 창업이 하나의 업을 세우는 일로 준비되기보다, 취업의 연장이나 전업의 대안으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창업이라는 단어의 본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창업[創業]. 나라나 왕조 따위를 처음으로 세움. 사업 따위를 처음으로 이루어 시작함.
창업은 단지 가게를 여는 일이 아닙니다. 창업은 업을 세우는 일입니다. 업을 세운다는 것은 자신이 믿는 질서와 가치와 방식을 세우는 일입니다. 그래서 창업자는 물건을 파는 사람이기 전에, 자신이 믿는 세계를 시장 안에 세우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기업은 브랜드를 만들어 런칭이라는 이름으로 매장을 열고 상품을 팔고 싶어 합니다. 개인은 창업이라는 이름으로 매장을 열고 상품을 팔고 싶어 합니다. 기업의 꿈은 많은 매장을 갖는 것이고, 개인의 꿈은 자신의 브랜드를 갖는 것입니다. 비슷하지만 다르고, 다르지만 비슷합니다. 결국 모두가 브랜드도 구축하고 돈도 벌고 싶어 합니다.
그렇다면 돈을 먼저 벌어야 할까요. 브랜드를 먼저 구축해야 할까요.
돈으로 브랜드를 만들 수 있다면 수많은 대기업이 이미 위대한 브랜드를 만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돈이 있다고 브랜드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반대로 브랜드를 구축했다고 해서 곧바로 돈을 버는 것도 아닙니다.
브랜드는 돈보다 느리게 자랍니다. 그러나 오래 남는 것은 돈이 아니라 브랜드입니다.
기업과 개인이 브랜드를 구축하지 못하는 이유는 오직 런칭과 창업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당장 살아남기 위한 생존 모드로 창업하면, 브랜드가 만들어지는 시간을 견디기 어렵습니다. 그것은 결혼생활을 준비하지 않고, 오직 10분짜리 결혼식에만 온 신경을 쓰는 예비 신혼부부와 같습니다.
결혼식은 시작일 뿐입니다. 진짜는 결혼생활입니다.
마찬가지로 런칭은 시작일 뿐입니다. 진짜는 브랜드를 살아내는 시간입니다.
매장을 여는 순간 브랜드가 시작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때부터 창업자는 매일 같은 질문 앞에 서게 됩니다. 나는 왜 이 일을 하는가. 나는 무엇을 지키려 하는가. 나는 어떤 약속을 반복해서 증명할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쌓일 때 비로소 그 이름은 브랜드가 됩니다.
마케팅은 결국 브랜드를 구축하는 일이라는 피터 드러커의 말에 공감한다면, 창업 역시 브랜드 구축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브랜드에 관한 지식 없이 창업하면, 결국 아무것도 남기지 못할 수 있습니다. 브랜드는 시간과 신뢰와 자기다움으로 만들어집니다.
무엇보다 창업자가 자신이 세우려는 세계가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창업자는 상품을 준비하기 전에 질문을 준비해야 합니다. 간판을 달기 전에 자신이 붙들어야 할 이름의 의미를 알아야 합니다. 손님을 기다리기 전에 누구와 어떤 관계를 맺고 싶은지 알아야 합니다. 가게를 여는 사람은 손님을 기다립니다. 브랜드를 세우는 사람은 자신이 믿는 세계로 사람을 초대합니다.
창업은 개업이 아닙니다. 창업은 자기다움으로 하나의 세계를 세우는 일입니다.
그 세계를 살아내는 사람만이 장사를 시작한 사람을 넘어, 자기만의 부(富)랜드를 세운 사람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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