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님
엔텔러키 브랜드 편집장 권민입니다.
저는 지금도 “브랜드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자주 받습니다.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이제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미리 준비해두고 있습니다. 제 대답은 간단합니다.
“브랜드는 비제품이 제품을 초월할 때 만들어집니다.”
어떤 사람에게 할리데이비슨은 단순한 모터사이클이 아닙니다. 그들에게 할리는 도심 속에서 타는 말과 같습니다. 할리를 타면서 자유와 해방감을 느낍니다. 여기서 모터사이클은 제품이지만, 말과 자유는 비제품입니다.
비슷한 예로, 1억 원짜리 시계가 있다고 해보겠습니다. 이 시계는 수심 600미터 방수 기능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계를 차는 사람이 해저에서 시간을 확인하기 위해 시계를 찰까요? 이런 고가의 브랜드는 단순한 시계를 넘어서 가짜 모험심, 사치, 그리고 자부심이라는 비제품을 팔고 있습니다.
한 번은 “백화점 명품 매장 앞에 수십 명이 대기 중”이라는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그들이 사려는 1,500만 원짜리 샤넬 백의 제품 설명서에는 양가죽과 금장 금속으로 만들어졌다고 적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금장은 사실 도금입니다. 이 수천만 원짜리 샤넬 백에는 내비게이션 기능이나 건강 센서, 스마트폰 충전 기능 같은 것은 없습니다. 심지어 샤넬 홈페이지에서도 그 백의 상세한 기능보다는 이념, 관계, 가치, 영원함 같은 단어들로 설명합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무엇을 사는 것일까요?
만약 그들이 1,500만 원짜리 샤넬 백을 들고 나가도 아무도 알아보지 못한다면, 과연 새벽부터 줄을 서서 그 백을 사려고 할까요?
코코 샤넬은 “누군가로 대체할 수 없는 존재가 되려면 항상 달라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이 말대로라면 사람들은 매년 같은 샤넬 백을 사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왜 사람들은 작년 모델과 큰 차이가 없는 샤넬 백을 사려고 할까요? 명품이 다른 사람과 자신을 구별해주는 사회적 상징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단순히 금장 양가죽 백이 아니라 샤넬의 명성이라는 비제품입니다.
그들은 샤넬의 아이덴티티를 자신의 아이덴티티로 삼아 타인과 구별되기를 원합니다.
코코 샤넬은 명품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명품은 필수품이 끝나는 곳에서 시작하는 필수품이다.”
여기서 첫 번째 필수품은 제품을 의미하고, 두 번째로 시작하는 필수품은 비제품을 뜻합니다.
다시 말해 샤넬 백은 필수품을 사치품으로, 사치품을 다시 필수품으로 만드는 상징적인 제품입니다.
이와 비슷한 발상은 이미 오래전에 나온 적이 있습니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찰흙을 빚어 그릇을 만들지만, 그릇을 쓸모 있게 하는 것은 그 안의 빈 공간이라고 말했습니다. 손에 잡히는 물성인 찰흙으로 손에 잡히지 않는 빈 공간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영국의 조각가 애니시 커푸어(Anish Kapoor)의 작업도 같은 자리에 서 있습니다. 그의 작업에서도 ‘보이드(void)’, 즉 형태가 만들어내는 빈 공간은 반복해서 등장하는 중요한 주제입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제품을 비제품으로, 물성을 비물성으로 만드는 것이 진정한 브랜드의 공식입니다.
“브랜드는 상품에 의미를 부여하고, 가치를 창조하여 상징으로 만듭니다.”
브랜드가 비제품을 창조하는 방법에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처음 읽을 때는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좋아하는 브랜드나 익숙한 브랜드를 대입해보면 그 브랜드의 본질과 비본질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첫째, 브랜드는 낯선 것을 익숙하게, 익숙한 것을 낯설게 만듭니다.
브랜드는 혁신을 통해 새로운 개념을 대중에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하고, 동시에 익숙한 것에도 새로움을 불어넣습니다.
둘째, 브랜드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고, 보이는 것을 보이지 않게 만듭니다.
브랜드는 우리가 눈치채지 못한 가치를 드러내면서, 때로는 눈에 보이는 것 이상의 의미를 숨겨놓습니다.
셋째, 브랜드는 가질 수 없는 것을 갖게 하고, 가질 수 있는 것을 갖지 못하게 만듭니다.
브랜드는 희소성과 상징성을 통해 사람들이 원하지만 쉽게 가질 수 없는 것처럼 느끼게 만들고, 때로는 평범한 것에도 특별한 가치를 부여해 손에 닿지 않는 것처럼 만듭니다.
스타벅스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1999년, 스타벅스가 우리나라에 첫 매장을 열었습니다. 그전까지는 주로 본차이나 같은 고급 찻잔에 커피를 마셨고, 서서 커피를 마시는 것은 드문 일이었습니다. 야외에서는 종이컵에 봉지커피를 타 마시는 정도가 전부였습니다. 커피를 주문하면 반드시 자리에 앉아 마시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스타벅스의 등장으로 이 모든 것이 바뀌었습니다. 스타벅스는 직장과 집이 아닌 제3의 공간을 제공하며, 도심 속 오아시스처럼 편안한 휴식을 제안했습니다.
소음에 민감한 저는 스타벅스 같은 오픈된 공간에서 오래 머무르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스타벅스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곳에서 공부하며 집보다 더 편안하게 느낀다고 합니다. 스타벅스가 런칭된 이후, 소득 수준에 맞지 않는 사치스러운 생활을 즐기는 사람을 비꼬는 ‘된장녀’라는 신조어가 생겨났습니다.
스타벅스는 종이컵으로 커피를 마시는 문화를 익숙하게 만들었습니다. 보이지 않던 제3의 장소를 눈에 보이도록 제시했습니다. 도심 속에서 커피 한 잔을 통해 손에 닿지 않던 쉼을 제공했습니다.
브랜드가 만들어내는 비본질적 실체는 새롭고, 보이지 않으며, 가질 수 없는 것입니다.
이를 다이아몬드 반지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다이아몬드 반지는 물리적으로 단단한 제품이지만, 결혼반지로 사용될 때 새롭고, 보이지 않으며, 가질 수 없는 사랑을 상징합니다. 한때 다이아몬드 광산과 유통을 지배했던 드비어스(De Beers)는 전성기에 세계 다이아몬드 원석 유통의 대부분을 장악했습니다.
1947년에 만들어진 “다이아몬드는 영원하다(A Diamond is Forever)”라는 슬로건은 다이아몬드를 영원한 사랑과 결혼의 상징으로 자리 잡게 만들었습니다. 이후 다이아몬드 반지는 결혼과 약혼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제품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다이아몬드를 가장 많이 수입하는 나라 중 하나인 미국은 동시에 이혼율이 높은 나라로도 꼽힙니다. 물론 이 둘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이처럼 브랜드는 단순한 제품을 초월해 비제품적 의미를 부여하고, 물성을 비물성으로 전환합니다.
“그렇다면 이제 브랜드를 정의할 수 있을까요?”
자신이 경험한 브랜드를 설명할 수는 있어도, 브랜드를 완벽히 정의하기는 어렵습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비제품이 제품을 초월할 때 브랜드가 된다”는 말도 결국 저만의 정의일 뿐입니다.
애플의 브랜드 책임자와 코카콜라의 브랜드 책임자가 만난다면, 그들은 브랜드에 대해 어떤 공통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요?
코카콜라의 전략을 애플에, 애플의 전략을 코카콜라에 적용할 수 있을까요?
두 브랜드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이처럼 브랜드는 단 하나의 정의로 일반화할 수 없습니다. 브랜드를 정의하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브랜드가 끊임없이 변화하기 때문입니다.
브랜드는 단순한 상품에 의미를 부여합니다. 그 의미를 소비자가 받아들이면 가치가 형성됩니다.
그렇게 형성된 가치가 여러 사람에게 인정받을 때 브랜드는 상징이 됩니다.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자면 브랜드는 상품에서 아이덴티티로, 아이덴티티에서 사상으로 변환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개념은 나이키와 같은 브랜드에도 적용할 수 있지만, 환경 보호를 중점으로 삼는 파타고니아(Patagonia)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파타고니아의 홈페이지를 보면 상품 소개, 브랜드 철학, 캠페인이 어떻게 유기적으로 연결되는지 알 수 있습니다. 파타고니아는 단순히 상품을 판매하는 브랜드가 아니라 환경 보호라는 아이덴티티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환경 보호라는 가치를 소비자에게 전달하고, 그 가치를 함께 공유하며 실천할 것을 촉구합니다.
파타고니아의 정체성은 “지구를 살리자”라는 사상으로 확장되며, 고객들은 이 사상을 수용하고 동참하게 됩니다. 결국 파타고니아는 상품을 파는 것이 아니라 사상과 가치를 전파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요?”
컬트 브랜드 연구가이자 『왜 그들은 할리와 애플에 열광하는가?』의 저자인 더글라스 애트킨(Douglas Atkin)은 “브랜드는 소비자를 ‘더욱 나답게’ 만드는 코드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는 사용자가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브랜드를 통해 얻는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런 공식이 만들어지는 것일까요?
인간은 브랜드를 어떻게 바라보고 소비하는 것일까요?
『열광의 코드 7』의 저자 패트릭 한론(Patrick Hanlon)은 “브랜드는 소비자의 믿음으로 이루어진 구조물”이라고 설명합니다. 이는 소비자가 브랜드를 보이지 않는 가치와 믿음으로 이해한다는 뜻입니다.
소비자 행동 연구가인 러셀 벨크(Russell Belk, 캐나다 요크대학교 슐릭경영대학원 교수)는 자신의 연구에서 “소비자는 브랜드에 인간의 특성, 즉 성격을 부여합니다. 브랜드의 상징을 통해 자아를 경험하며, 소유물을 자신의 일부로 간주합니다.“라고 밝혔습니다.
보스턴대학교 경영대학원 교수인 수잔 포니어(Susan Fournier) 또한 “사람은 물리적인 대상을 의인화하여 관계를 형성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말합니다.
『나는 왜 루이비통을 불태웠는가?』의 저자 닐 부어맨(Neil Boorman)은 브랜드에 중독되었다가 브랜드 없이 살아가는 경험을 통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브랜드는 자아의 상징이다. 소유물은 내가 누구이며 무엇을 느끼고, 어떠한 모습이 되고 싶은지를 투영한다. 고객들은 자아에 대한 긍지를 확인하기 위해 브랜드와의 관계에 길들여지고 있다.”
브랜드 연구자들은 여전히 5천 년 전, 소유물을 구별하기 위해 소 엉덩이에 불도장을 찍던 오래된 브랜드 개념을 버리라고 촉구합니다. 상품을 구별하기 위한 상표는 정의할 수 있지만, 정체성을 나타내는 브랜드는 정의하기 어렵습니다.
브랜드는 단순한 상표가 아니라 상징이며, 이름이 아닌 이미지입니다. 브랜드는 우리의 정체성을 반영하고, 더 나아가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를 보여줍니다. 이러한 이유로 브랜드를 명확히 정의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래서 저는 여전히 같은 자리로 돌아옵니다. 브랜드란 무엇일까요?
비제품이 제품을 초월할 때, 바로 그 자리에서 브랜드가 태어납니다.
다음 편지에서는 브랜드가 태어나는 첫 순간, 그 시작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