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물건은 무엇인가
서울에서 수원으로 이사했고, 수원에서도 네 번이나 더 옮겨 다녔다. 그런데도 나는 아직도 버리지 못하는 물건이 몇 개 있다.
오래되고 촉에 문제가 생긴 라미 만년필, 밑창이 닳았지만 교체를 하지 못하는 닥터 마틴 구두, 아이들이 용돈 모아서 사주었지만 이제는 손잡이의 색이 검게 변한 가방. 새것보다 깨끗하지 않고, 요즘 물건보다 편리하지도 않다. 그런데도 버리지 못한다. 물건이 아까워서가 아니다. 그 물건 안에 내가 있기 때문이다.
만년필에는 내가 쓴 문장이 있고, 구두에는 내가 걸었던 길이 있으며, 가방에는 내가 만나러 갔던 사람들이 있다. 물건은 시간이 지나면서 낡았지만, 그 안에 있는 기억은 오히려 선명해졌다.
처음 샀을 때 그것은 상품이었다. 지금 그것은 나의 일부다.
그렇다면 물건은 언제 쓰레기가 될까.
고장이 났을 때일까. 낡았을 때일까. 쓸모가 없어졌을 때일까.
아니다. 어쩌면 물건은 버리는 순간 쓰레기가 되는 것이 아니라, 만들 때부터 쓰레기로 태어나는지도 모른다.
오래 사용할 수 없도록 만들어진 물건, 고칠 수 없게 만들어진 물건, 유행이 지나면 부끄러워지도록 만들어진 물건, 다시 사게 하기 위해 곧 싫증 나도록 만들어진 물건은 아직 진열대 위에 있어도 이미 쓰레기다. 우리는 쓰레기를 버리는 것이 아니라, 쓰레기가 될 물건을 먼저 사고 있는지도 모른다.
새것의 반대말은 낡은 것이 아니다. 새것의 반대말은 버려진 것이다. 낡았다는 것은 아직 사용되고 있다는 뜻이다. 흠집은 물건의 실패가 아니라 누군가와 함께 살아온 흔적이다. 가죽이 부드러워지고, 나무의 색이 깊어지고, 천의 모서리가 닳는 동안 물건은 상품에서 생활로 들어온다.
물건이 수명을 다한 것이 아니다. 우리의 관심이 먼저 수명을 다했다. 그래서 쓰레기의 반대말은 재활용품이 아니라 애착일 수 있다. 누가 만들었는지 알고, 어떤 재료로 만들었는지 알고, 자신과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 아는 물건은 함부로 버릴 수 없다. 물건에 관계가 생기면 폐기는 어려워진다.
대량생산의 가장 큰 문제는 많이 만든다는 것만이 아니다. 만든 사람과 사용하는 사람 사이의 관계를 지워버린다는 것이다.
가격표는 있지만 얼굴은 없다.
좋은 물건은 비싼 물건이 아니다. 자신의 수명을 충분히 살아내는 물건이다.
그렇다면 핸드메이드는 쓰레기가 되지 않는 물건일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손으로 만들었다는 말 안에 우리는 정성, 진정성, 희소성, 친환경, 윤리성까지 한꺼번에 넣었다. 그래서 '핸드메이드'라고 적힌 작은 라벨 하나가 그 물건의 모든 과정을 대신 설명하게 했다. 그러나 손은 물건을 만들기도 하고 쓰레기를 만들기도 한다.
핸드메이드는 면죄부가 아니다. 손은 물건의 출생을 증명하지만, 그 물건의 삶까지 보증하지 않는다. 손으로 만드는 일은 느리다. 그래서 핸드메이드는 자연스럽게 적게 만드는 일처럼 보인다.
하지만 느리게 만든다고 적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 오늘 열 개를 만들고 내일 열 개를 만들면 결국 많이 만든다. 온라인 플랫폼은 메이커의 손에도 공장의 속도를 요구한다.
공장은 기계로 대량생산하지만, 플랫폼은 사람의 손을 대량생산한다. 핸드메이드가 산업이 되는 순간, 손은 다시 공장이 된다. 그러나 메이커에게 적게 만들라고 말하면서 더 싸게 팔라고 요구할 수는 없다. 우리는 손으로 만든 물건을 좋아하면서도 손으로 만든 시간에는 돈을 지불하려 하지 않는다.
유행하기 때문에 만들지 않은 것. 팔릴 것 같지만 오래 쓸 수 없어 만들지 않은 것. 가격을 낮추기 위해 노동을 희생해야 해서 만들지 않은 것. 친환경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또 다른 쓰레기가 될 것 같아 만들지 않은 것.
브랜드에는 만든 목록만큼 만들지 않은 목록이 필요하다. 어쩌면 메이커의 가장 중요한 작품은 만들지 않은 물건일지도 모른다. 핸드메이드의 본질은 손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손을 멈출 수 있는 데 있다.
많이 만들 수 있어도 적게 만드는 절제, 쉽게 만들 수 있어도 오래 생각하는 태도, 팔릴 수 있어도 만들지 않는 판단이 핸드메이드를 휴먼메이드로 바꾼다.
휴먼메이드는 사람이 만든 물건이 아니다.
사람답게 만든 물건이다.
핸드메이드는 손의 기술이고, 휴먼메이드는 손의 윤리다. 그러나 이 질문은 만드는 사람만의 몫이 아니다. 사는 사람도 같은 질문 앞에 서야 한다.
나는 물건을 살 때 가격부터 본다. 필요한 물건인지 생각하기 전에 할인율을 보고, 얼마나 오래 사용할지 생각하기 전에 배송 날짜를 확인한다.
나는 물건을 선택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정말 내가 선택한 것일까.
광고가 먼저 골라놓은 것, 알고리즘이 반복해서 보여준 것, 다른 사람이 많이 산 것을 내가 마지막에 결제한 것뿐은 아닐까.
우리는 소비를 선택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대부분의 소비는 선택보다 반응에 가깝다. 선택은 여러 상품 가운데 하나를 고르는 일이 아니다. 무엇을 살 것인가를 결정하기 전에 무엇을 사지 않을 것인가를 정하는 일이다.
우리는 대개 물건의 앞면만 본다. 디자인, 기능, 가격, 브랜드, 포장.
그러나 물건에는 보이지 않는 앞과 뒤가 있다. 앞에는 재료가 있었고, 그 재료를 얻기 위해 사용한 땅과 물과 에너지가 있었다. 뒤에는 폐기가 있다. 사람에게는 폐기지만 지구에게는 이동이다.
나는 오래전 『유니타스브랜드』의 에코시스템 특집을 만들면서 환경과 생태계가 서로 다른 말이라는 것을 배웠다. 환경이 인간을 중심에 놓고 인간을 둘러싼 조건을 말한다면, 생태계는 인간을 수많은 생명 가운데 하나로 놓는다.
무지함은 값싼 소비의 가장 좋은 재료다. 값싼 물건은 가격이 낮은 물건이 아니라, 가격의 일부를 다른 존재에게 떠넘긴 물건일 수 있다. 소비는 투표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투표보다 더 정확한 말은 지시일 수 있다.
소비자는 생산이 끝난 뒤에 등장하는 사람이 아니다. 다음 생산이 시작되기 전에 이미 방향을 정하는 사람이다. 지구인은 흠 없는 소비자가 아니다. 자신의 선택이 어디에 닿는지 생각하는 사람이다.
나는 왜 이것을 사려고 하는가. 필요하기 때문인가. 외롭기 때문인가. 남에게 보이기 위해서인가. 지금의 불안을 잠시 잊기 위해서인가. 물건에 대한 질문은 결국 나에 대한 질문이 된다. 그러나 내가 고른 물건은 나의 생활에서 끝나지 않는다. 내가 지불한 돈은 만든 사람의 노동으로 돌아가고, 내가 버린 물건은 지구의 어딘가로 다시 흘러간다.
좋다는 말에는 언제나 주어가 필요하다.
누구에게 좋은가.
언제까지 좋은가.
어디까지 좋은가.
좋은 물건 하나는 혼자 좋지 않다.
주변을 함께 좋게 만든다.
그것이 생태계다.
나무는 혼자 숲이 되지 않는다. 뿌리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균류와 연결되고, 꽃은 벌과 나비를 부르며, 떨어진 잎은 흙이 되어 다시 나무를 살린다. 주변에 아무것도 남지 않은 브랜드는 생태계가 아니라 사막이다. 브랜드는 자신이 속한 생태계보다 클 수 없다. 브랜드가 생태계를 파괴하면 결국 자신도 사라진다.
지속가능성은 오래 살아남는 기술이 아니다.
함께 살아남는 방식이다.
좋은 생태계에는 소비자가 없다.
다음 생산에 참여하는 사용자만 있다.
메이커가 물건의 첫 번째 책임자라면 사용자는 두 번째 책임자다. 플랫폼은 이 둘이 책임을 나누도록 돕는 세 번째 책임자다.
환경학교라고 부르면 배워야 하고, 친환경 상점이라고 부르면 사야 한다. 그러나 '놀이터'에서는 참여해야 한다. 좋은 브랜드는 생태계 안에서 살아남는 브랜드가 아니다. 자신이 살아갈 생태계를 만드는 브랜드다.
자기만 커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연결된 존재가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드는 브랜드. 더 많은 물건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더 좋은 관계를 남기는 브랜드.
내가 아직도 오래된 만년필과 낡은 가방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도 어쩌면 그 물건이 나와 만든 사람과 지나간 시간을 여전히 연결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좋은 물건은 무엇인가.
오래 사용하는 물건일 수 있다. 고칠 수 있는 물건일 수 있고, 자연으로 돌아가는 물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좋은 물건은 만든 사람과 사용하는 사람, 지금의 생활과 미래의 생활, 인간과 자연 사이를 다시 연결하는 물건이다.
물건 하나가 관계 하나를 살리고, 관계 하나가 지역 하나를 지키며, 지역 하나가 지구의 한 부분을 회복시킨다. 그래서 좋은 물건은 작은 물건이 아니다.
작은 생태계다.
이 물건은 얼마나 잘 만들어졌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잘 살아갈 수 있는가.
이 물건은 누구에게 좋은가. 그리고 이 물건이 존재함으로써 무엇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가. 그리고 나는 이 물건과 얼마나 오래 함께 살고 싶은가.
내가 버리지 못한 물건들은 처음부터 손으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나와 함께 산 시간이 그것을 내 손으로 다시 빚어놓았다.
이번 엔텔러키 브랜드 특집에서 준비한 '핸드메이드'도 그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