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 직관 지능: 보이지 않는 관계를 읽는 힘
이전 편지에서 우리는 브랜더에게 필요한 것은 더 큰 목소리가 아니라 더 깊은 귀라고 했다. 그러나 듣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깊이 들은 사람은 이제 그 소리를 읽어 내야 한다.
탈무드는 말한다. 입을 다물면 귀가 열린다고.
그렇다면 브랜드를 향한 직관은 무엇을 닫아야 열릴까. 생각을 닫아야 한다. 더 정확히 말하면, 책상머리에서 파워포인트로 하는 생각을 닫아야 직관이 열린다.
많은 브랜더가 인터넷에서 정보를 긁고, 파워포인트 보고서를 만들거나 읽으며 브랜드를 알아 간다. 그러나 이것은 책만 보고 브랜드를 론칭하는 것보다 위험할 수 있다. 영어로 매끈하게 다듬어진 전문 용어와 신뢰감을 주는 숫자로 무장한 보고서는, 의사결정권자가 자신의 직관을 쓰지 못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결국 그들은 숫자의 설득에 밀려, 직감으로 받은 '그 무엇'을 무시한 채 결재한다. 수많은 론칭 보고서를 보았지만, 아직 '직관'이라는 항목은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보고서를 만드는 과정에서 직관은 무시되거나 덧칠되고, 때로는 조사 도중에 직관과 정반대 방향으로 보고서가 완성된다.
그렇게 숫자만 막연히 믿고 실행한 무모한 전략이 브랜드를 무너뜨린 경우를 나는 더 많이 보았다.
소비자를 통해 브랜드를 읽어 내는 이 능력, 곧 브랜드 직관 지능은 말처럼 쉽지 않다. 어떤 브랜드가 소비자의 집에, 가방에, 사무실이나 차 안에 있다 한들 그것을 일일이 물어보거나 들여다볼 수는 없다.
게다가 브랜드 직관 지능은 단지 자기 브랜드를 꿰뚫어 보는 통찰을 말하지 않는다. 그것은 소비자의 라이프스타일과 소비의 흐름을 읽기 위해, 보이지 않는 마음속 브랜드의 구조를 읽어 내는 능력이다. 그러므로 이 지능을 얻기 위해 자사 브랜드만 들여다볼 필요는 없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유추의 능력이다.
유추란 여러 현상이 어떤 속성과 관계, 구조와 기능에서 닮았다면, 다른 속성과 관계, 구조와 기능에서도 닮았으리라 추론하는 논리의 힘이다.
브랜드를 읽는 사람은 하나의 브랜드만 보지 않는다. 그는 옷장에서 식탁을 읽고, 거실에서 여행을 읽고, 자동차 안에서 취향을 읽으며, 휴대전화 화면에서 삶의 불안을 읽는다.
직관은 감이 아니라 축적된 관계의 독해다. 많이 본 사람이 아니라, 깊이 연결해서 본 사람이 갖게 되는 능력이다. 이 직관 지능을 훈련하기 좋은 분야가 의식주휴미락 가운데 '의'다. '의', 곧 패션은 소비자와 시장, 트렌드와 생각, 가치와 선호, 느낌과 감성을 두루 유추 학습할 수 있는 훈련장이다. '의'를 통과하면 식·주·휴·미·락의 온·오프라인까지 관통하며 직관을 익힐 수 있다.
그런데 직관으로 읽어야 할 그 '보이지 않는 구조'의 정체는 결국 무엇인가. 관계다.
시장은 상품의 진열장이 아니라 관계의 그물이다. 그 그물은 보고서로 다 그려지지 않는다. 오직 직관으로 더듬어질 뿐이다. 사람들이 흔히 '비즈니스는 생태계'라고 말하는 것도 같은 이야기다. 생태계 역시 관계의 다른 이름이기 때문이다.
생태계는 멀리서 보면 아름답다. 그러나 단 10분만 메뚜기가 되어 그 안으로 들어가 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아침마다 노래하던 새는 굶주린 포식자가 되고, 사방엔 사마귀와 거미가 득실거린다. 자연은 평온한 풍경이 아니라 경쟁과 공생, 포식과 의존, 생존과 균형이 동시에 작동하는 긴장의 현장이다.
시장도 그렇다.
저녁 스카이라운지에서 내려다보는 네온사인의 전경은 화려하다. 그러나 그 빛 아래에서는 기업들 간의 시가전이 벌어진다. 명동을 보라. 쇼핑의 눈에는 살 것이 가득하지만, 생태계의 눈에는 글로벌 브랜드와 내셔널 브랜드가 소리 없는 총성을 주고받는 각축장이다.
생각해 보면 비즈니스 용어의 상당수는 전쟁 용어에서 빌려 왔다. 전략, 타깃, 통합운영, 기획, 작전, 실행. 하나같이 화약 냄새가 난다. 그렇다면 이 전쟁터에서 정작 필요한 지식은 어디 있을까. 서점에 가도, 우리는 그마저 요약본으로 읽는다.
그러나 브랜드가 모인 곳, 곧 시장을 전쟁터와 생태계로만 본다면 절반만 본 것이다. 그곳은 생존 본능과 전투력만으로 살아남는 곳이 아니며, 단순한 시장도 아니다.
하나의 브랜드는 적게는 수십 명, 많게는 수천 명의 공동 작품이다. 그 브랜드를 통해 누군가의 직장과 가정이 이어지고, 그것을 사는 사람의 감정까지 연결된다. 사람들은 브랜드를 자기 삶의 연결고리로, 곧 관계를 맺는 가장 작은 단위로 쓰고 있다. 그러니 시장은 전쟁터처럼 보이고, 생태계처럼 작동한다. 그러나 그 둘을 관통하는 본질은 하나다. 관계다.
별과 별이 인력으로 우주의 균형을 잡듯, 브랜드도 가격과 기능과 품질로, 그리고 고객을 통해 서로에게 영향을 미친다. 자연의 생명체가 먹이사슬 안에서 서로의 에너지원이 되듯, 브랜드도 저마다 먹이사슬의 체계를 가진다. 인간의 뇌가 뉴런의 복잡한 연결로 모든 생명 활동을 정교하게 운영하듯, 브랜드와 얽힌 우리의 삶도 복잡하지만 정교하게 꾸려진다.
우주의 별, 자연의 생명체, 뇌의 뉴런, 그리고 시장의 브랜드. 공간과 차원은 저마다 다르지만, 이들은 모두 같은 일을 하고 있다. 관계를 맺는 일이다.
보이지 않던 인간의 관계망을 눈에 보이게 만든 것이 웹이다. 내 삶의 관계를 글로 적어 보라 하면 복잡할 것 같지만 의외로 단순하다. 그러나 한 사람의 블로그와 카페가 웹에서 어떻게 이어져 있는지 그려 보라 하면 그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곳까지 모두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시장을 생태계와 전쟁터에 빗댄 것은 브랜드에 관한 종말론을 말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우리가 만든 브랜드의 정체성을 한낱 시장의 상품으로만 가두지 말자고 말하기 위해서다.
세계가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이미 우리의 일상이 되었다. 웹을 통해 사람은 병렬과 직렬로 이어지고, 문화마저 서로 연결된다. 한류와 막걸리, 와인과 커피, 뉴욕 스타일을 두른 브랜드들은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전 세계 사람들을 더 가깝게 묶고 있다.
하나의 브랜드가 생태계를 만들고, 그 생태계가 시장과 산업, 끝내 문화까지 바꾼 사례를 우리는 이미 보았다. 애플 앱스토어의 독주는 휴대폰 회사와 통신사들을 손잡게 만들었다. 하나의 브랜드가 산업 전체의 지형을 다시 그린 것이다.
이제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 하나의 브랜드가 전체가 될 수 있고, 시장의 생태계 그 자체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사람들이 '사과'에만 눈길을 둘 때, 뉴턴은 사과나무 곁에서 '떨어지는 사과'를 바라보았다. 답을 준 것은 사과가 아니었다. 떨어지는 사과를 보며, 그 너머에 있는 보이지 않는 힘을 읽어 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뉴턴이 본 것은 사과가 아니라, 사과와 지구 사이의 관계였다.
브랜더가 보아야 할 것도 브랜드가 아니라, 브랜드와 브랜드 사이의 관계다. 브랜드와 소비자 사이의 관계, 브랜드와 시장 사이의 관계, 브랜드와 문화 사이의 관계다.
비즈니스를 생태계로, 웹의 구조로, 지구의 법칙으로 이해하는 일은 말처럼 쉽지 않다. 너무 커서 숫자로는 잡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떨어지는 사과를 오래 바라본 뉴턴처럼, 그 관계를 직관으로 읽어 낼 수밖에 없다.
브랜드 직관 지능은 보이지 않는 관계를 읽는 힘이다.
숫자 사이의 침묵을 읽고, 소비자의 행동 뒤에 숨은 마음을 읽고, 경쟁자의 움직임 너머에 있는 생태계의 변화를 읽는 힘이다. 브랜드를 맡은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자료가 아니라, 자료 너머의 관계를 보는 눈이다.
시장은 늘 무언가를 쓰고 있다.
다만 그 글은 문장이 아니라 관계로 쓰인다. 그러므로 브랜더는 보고서만 읽어서는 안 된다. 시장이 맺고 있는 관계를 읽어야 한다. |